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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감사 기도(시 138:1-8) 2025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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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25-02-12 07:39 조회 591 댓글 0
 

                           다윗의 감사 기도(시 138:1-8)            2025. 2. 9

 

 

오늘 본문은 다윗의 감사 기도 내용이다. 감사란 신앙의 척도이다. 신앙심이 깊어 가면 깊어 갈수록 감사하게 된다. 그렇지 않나. 우리가 신앙으로 살아가지만 그 누구라도 믿음이 약해지면 불평이 늘어나게 되고 믿음이 깊어지면 감사가 늘어나는 법이다. 다윗은 감사의 사람이었다. 오늘의 본문에서 대하게 되는 대로 다윗은 감사의 사람이요 기도의 사람이요 찬송의 사람이요 예배의 사람이요 말씀의 사람이었다. 온 맘을 다하여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의 사람이었다. 

 

시편 138편은 다윗이 왕으로 있으면서 주변 나라의 침략을 막고 강성한 이스라엘을 세워 가면서 하나님이 돌보시고 지켜 주시는 은혜에 감사하며 쓴 감사와 찬양의 고백을 담고 있다. 1절에 보면, “내가 전심으로 주께 감사하며”라고 하였다. 2절에 보니까, “주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으로 말미암아 주의 이름에 감사하며”라고 하였다. 4절에 보니까, “여호와여 세상의 모든 왕들이 주께 감사할 것은”이라고 하였다. 이는 장차 세상의 모든 왕들도 자신처럼 하나님께 감사하는 날이 오게 해 달라는 간구를 담고 있는 내용이다. 다윗은 진심으로 감사하고 진심으로 찬양하는 예배의 사람이었다. 2절에 보니까, “내가 주의 성전을 향하여”라고 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성전이란 솔로몬의 성전이 지어지기 이전이니까 성막을 일컫는다. 다윗은 예배의 사람이었다. 다윗은 여호와의 법궤가 모셔져 있는 성막에 늘 마음을 두고 살아갔다. ‘향하여’라는 ‘엘’이라는 말은 ‘앞에서’라는 뜻이다. 다윗은 성전 앞에서,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주께 감사하는 기도를 드리고 감사하는 찬양을 올려 드리며 살아가기를 즐겨 하던 예배의 사람이었다. 다윗은 기도드릴 때마다 무엇을 감사하고 있나. 

 

 

주의 말씀으로 인한 감사.

2절 후반부에 보니까 다윗이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리고 감사하며 찬양하는 이유는 “주께서 주의 말씀을 주의 모든 이름보다 높게 하셨기 때문이다”여기서 ‘주의 말씀’이란 ‘주의 언약’을 일컫는다. 그렇다. 하나님은 그를 믿고 따르고 섬기는 믿음의 각 사람에게 언약하신 바를 때가 되면 이루신다. 성경의 역사는 언약의 역사이다. 노아는 그의 시대에 하나님의 언약을 준행하였다. 그 당대의 주변 사람들이 노아를 흉보고 놀리고 정신 나간 사람 취급하여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노아의 생애는 그 시대를 향하신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따라서 준행하는 삶을 살아가고자 하였다. 노아와 그를 포함한 여덟 명의 가족들은 방주에 들어가는 은혜를 입었다. 홍수 심판으로 인류가 멸망할 때에 하나님은 노아와 그의 가족의 생명을 방주 안에서 보존하셨다. 

 

아브라함은 어떠한가. 아브라함의 나중 생애는 그와 그의 후손을 향하신 하나님의 언약 안에서의 삶이었다. 아브라함은 75세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그리고 언약 안에서 100년을 더 살았다. 아브라함은 175세에 하나님 앞으로 돌아가기까지 그의 생의 우여곡절 속에서 그를 향하신 하나님의 언약을 성취해가는 인생으로 점점 다듬어져 갔다. 그 시작이 나이 백세에 낳은 아들 이삭의 탄생이었다.  

 

4절에 보면, 다윗은 자신이 믿고 따르는 주의 말씀이 열방의 모든 왕들에게도 들려지고 깨달아지고 믿어지는 날이 오기를 소원하였다. 다윗의 시대나 오늘날이나 다 마찬가지이다. 신앙생활이란 우리 각 사람을 향하신 주의 말씀 즉 주의 언약의 말씀의 성취를 믿고 따르며 살아가는 삶이어야 한다. 우리는 370장 찬송가 <주 안에 있는 나에게>라는 찬송가의 4절을 안다. 

 

“내 주와 맺은 언약은 영 불변하시니 

그 나라 가기까지는 늘 보호 하시네

주님을 찬송하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내 앞길 멀고 험해도 나 주님만 따라가리”

 

라는 찬송가 말이다. 그렇다. 신앙생활이란 우리 각 사람을 향하신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깨닫아 가는 여정이어야 한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아들딸인 우리 각 사람이 이 험한 세상에서 빛의 자녀의 사명을 넉넉히 감당하며 살아가기를 원하신다. 그렇지 않나. 정상적인 엄마 아빠라면 이 세상에 태어나서 자라나는 자기의 아들딸이 주 안에서 강건하며 잘되고 복된 인생으로 성장하고 살아가기를 원하지 않겠는가. 창세기 49장에 나오는 아들 요셉을 향한 아버지 야곱의 축복처럼 “샘 곁의 무성한 가지가 되고 그 가지가 담을 넘는 축복”을 받기를 원하지 않겠는가.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깊은 샘의 복과 젖 먹이는 복과 태의 복”이 임하길 원하지 않겠는가. 다윗은 수 많은 체험을 통해서 알았다. 그래서 이렇게 고백한 것이다. “주께서 주의 말씀을 주의 모든 이름보다 높게 하셨음이라”(시138:2)라고 말이다. 

사실 이러한 언약의 말씀은 야곱의 열두 아들을 향한 축복 중에 유다에게 주어졌다. 창세기 49장 10절에 보면, “규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통치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기를”이라고 하였다. 그렇다. 하나님은 때가 되어서 유다의 자손인 다윗의 후손에게서 예수 그리스도가 혈통을 따라서 탄생하게 하셨다. 이사야 9장 6절의 예언처럼“평강의 왕”이 다윗의 후손으로 탄생하게 하셨다. 미가서 5장 2절에서는 “베들레헴 베르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 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라고 하였다. 

 

신앙생활이란 말씀 생활이다. 주의 말씀, 주의 언약의 말씀의 신실하심을 믿고 따르는 생활이다. “예수 따라가며 복음 순종하면 우리 행할 길 환하겠네 주를 의지하며 순종하는 자를 주가 늘 함께 하시리라 의지하고 순종하는 길은 예수 안에 즐겁고 복된 길이로다”찬송가 449장 <예수 따라가며>의 이런 고백이 우리 각 사람의 신앙 고백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영혼에 힘을 주어 강하게 하셨음을 감사.

다윗은 기도의 사람이었다.  3절에 보면, “내가 간구하는 날에 주께서 응답하시고”라고 하였다. 그렇다. 우리가 믿음으로 주께 간구하면 하나님이 응답하신다. 아기를 키우는 유모는 어린 아기에게 모든 관심을 기울인다. 아기의 모든 필요를 해결해 주려고 한다. 아기의 울음소리와 일거수일투족에서 눈을 떼지 않으려 한다. 왜 그런가. 사랑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인생들이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아 누리기를 원하신다. 신년 첫 주일에 묵상한 민수기 6장 24절 이하에 나오는 아론의 축복 기도 내용처럼 말이다. 어느 날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네 형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이러한 내용으로 이스라엘 자손을 축복하라고 하라”라고 말씀하셨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어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날마다 순간마다 이와 같은 축복하는 기도가 계속되는 가정과 범사가 되기를 소망한다. 

 

다윗은 기도할 때마다 그의 영혼에 힘을 주시며 그를 강하게 해 주시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체험하고는 하였다. 3절 말씀에 그런 간증의 고백이 담겨 있다. 맞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랑을 입는 성도의 영혼에 힘을 주시며 각 사람을 강하게 해 주신다. 그렇지 않나. 우리가 기도하며 찬송하고 예배를 드리며 늘 말씀을 묵상하며 살아가다가 보면 순간 순간마다 하나님이 내 영혼에 공급해 주시는 힘과 도우심과 은혜를 깨닫게 되지 않나. 다윗은 그의 영혼에 힘을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수 없이 체험했던 믿음의 사람이었다.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시18:1)

“하나님이 힘으로 내게 띠 띠우시며 내 길을 완전하게 하시며”(시18:32)

“여호와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이시니”(시28:7)

 

우리가 육체의 근력을 키우기 위해서 운동을 한다. 걷기고 하고 뛰기도 하고 헬스도 하고 필라테스도 한다. 근력 운동도 일정하게 꾸준히 계속하여야 하는 것처럼 영혼의 힘을 얻기 위해서는 계속하여 기도의 힘을 얻어야 한다. 수술을 마치고 나면 폐활량을 늘리도록 호홉을 돕는 의료 기구를 제공 받는다. 호흡이 기본이다. 호흡이 잘 되어야 한다. 사람의 탄생이 호흡으로부터이고 사람이 이 세상을 떠나는 순간에 호흡이 멈춘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주를 믿는 믿음으로 살고 내 영혼에 힘을 얻는 길은 내 영혼에 힘을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다. 기도가 영혼의 호흡이다. 명상(冥想)을 강조하고 명상을 건강의 기본으로 여기고 강조하는 이들은 깊은 호흡을 강조하는 것을 본다. 맞다. 깊은 들숨과 깊은 날숨이 중요하듯이 영혼의 힘을 얻기 위하여 진실한 기도 생활을 계속하여야 한다.

 

며칠 전에 어느 권사님께서 “이번 사순절에 기도를 계속해 보렵니다. 기도할 일이 많은데 그 동안 기도 줄을 내려 놓은 것을 회개합니다. 기도해야지요, 자녀들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하고 얼마나 기도할 제목이 많습니까”라고 말씀하시는 말씀을 들었다. 그렇다. 맞다. 기도해야 한다. 장로님 권사님 속장님 집사님 교사 여러분 성가대 여러분이 앞장서서 기도해야 한다. 지금은 기도해야 할 때이다.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6:2)라고 하였다. 다윗은 기도의 사람이었다. 다윗은 기도할 때마다 그의 영혼에 힘을 주시고 그를 강하게 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늘 체험하고는 하였다.

 

예수께서는 그 분주한 일과 중에서도 틈틈이 기도하셨다. 홀로 계신 시간의 대부분을 기도하는데 집중하셨다. 마가복음 1장 35절에 보니까,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라고 하였다. 예수께서는 날마다, 새벽마다 기도하셨다. 마태복음 14장 23절에 보면,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니라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라는 말씀이 있다. 예수께서 틈틈이 기도 생활을 계속하신 것을 알 수 있는 장면이다. 마태복음 21장 13절에 보면,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라고 강조해 주셨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예수께서는 붙잡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전날 밤에 밤새도록 주무시지 않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셨다. 예수께서는 언제나 기도를 통해서 그의 영혼에 힘을 공급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였다. 기도할 때에 힘을 얻게 된다. 기도할 때 권능이 임하게 된다. 기도할 때에 성령이 역사하게 된다. 기도하면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의 영혼에 권능을 공급하셔서 그의 영혼을 힘있게 하시고 강건하게 하신다. 

 

성령 받은 후에 이어진 베드로와 요한을 비롯한 제자들의 삶을 보라. 끊임이 없는 기도 생활을 통해서 성령의 임재와 새로운 기적을 체험하고는 하였다. 우리가 아는 사도 바울의 생애도 계속되는 기도의 힘을 의지하는 나날을 살아갔다. 기도는 선택이 아니다. 기도는 의무이다. 기도는 사명이다. 아무리 바빠도 먹고 사는 것처럼 기도는 계속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6-18)라고 하였다. 기도하면 기적이 일어난다. 기도해야 주님이 역사하신다. 기도해야 주님이 기뻐하신다. 기도해야 주의 힘이 임하게 된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33:3)

 

다윗은 기도의 사람이었다. 1절에 “내가 전심으로 주께 감사하며”라는 말씀은 전심으로 주께 감사하며 기도한다는 말씀이다. 

 

주의 오른손으로 구원하실 것을 믿고 감사.

다윗은 평생 고난을 많이 겪으며 살았다. 그는 청소년기 때인 십대 시절부터 청년기를 보내고 서른 살에 왕이 되기까지 남다른 고난과 역경을 극복해야만 했다. 왕이 된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블레셋을 비롯한 주변 국가의 침공 으로 평안할 날이 별로 없었다. 그런 어려움과 시련의 날들을 뒤로 하고 하나님은 그 때 그 때마다 큰 은혜를 부어 주셨다. 오늘 본문인 시편 138편에도 그런 감사의 고백이 담겨 있다. 

 

내가 환난 중에 다닐지라도 주께서 나를 살아나게 하셨다.

주의 손을 펴서 내 원수들의 분노를 막아 주셨다.

주의 오른손이 나를 구원하여 주셨다는 고백을 하고 있다.

 

본문에는 ‘...하시리로다’라는 미래형으로 되어 있지만 사실은 다윗은 그 동안 지내 오면서 그 때 그 때마다 하나님이 절대 절명의 위기의 순간에 그를 건져 주시고 보호해 주시고 지켜 주신 수 많은 체험을 하며 지내 왔다. 그래서 그런 믿음과 기대를 가지고 이런 기도를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시편 23편에 있는 다윗의 그 유명한 고백을 잘 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찌라도 해를 두려워 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23:4)라는 고백 말이다. 

 

그야말로 다윗은 외우내환(外憂內患) 가운데 살던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그는 왕이 되기 이전에도 그랬고 왕이 된 후에도 그랬다. 그에게는 언제나 바람 잘 날이 없었다. 평안한 날 보다는 불안하고 뒤숭숭한 날들이 훨씬 많았다. 전쟁이 끊임이 없었다. 다윗을 시기하고 모함하고 대적하는 세력들이 나라 안팎에 들끓었다. 그를 경쟁자로 여기는 정적들이 여기저기에 지뢰처럼 도사리고 있었다. 심지어는 아들 압살롬이 아버지의 왕권을 찬탈하려고 모반하는 일까지 겪어야 했다. 그러나 다윗은 그런 고난과 역경과 환난과 도전과 충격과 고통과 슬픔과 억울함과 비통함을 굳굳하게 딛고 일어났다. 

 

7절을 <개역한글 성경>에서는 “내가 환난 중에 다닐찌라도 주께서 나를 소성(蘇醒)케 하시고”라고 하였다. <새번역 성경> 에서는 “내가 고난의 길 한복판을 걷는다고 하여도, 주님께서 나에게 새 힘 주시고”라고 하였다.

그렇다. 다윗에게는 분명한 믿음이 있었다. 7-8절에 담긴 다윗의 고백처럼 그는 하나님께서 주의 오른손으로 그를 구원하실 것이며 보상해 주시고 영원히 버리지 않으실 것이란 믿음과 확신을 가지고 살았다. 다윗은 기도의 사람이요 분명한 믿음의 사람이었다. 

 

요즘 나는 어떤가. 답답하지 않은가. 막막하지 않은가. 먹먹하지 않은가. 우리가 그 어떤 환난과 시련을 겪게 될지라도 하나님은 나를 주목하시고 사랑하시며 주의 힘센 의로운 오른손으로 나를 붙들어 주시고 구원해 주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살아가자. 사도 바울은 이렇게 선언 하였다.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 싸임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고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후4:8-10)

 

라고 하였다. 그렇다. 우리 믿음의 형제자매들은 이 세상에서 그 어떤 형편에 처하고 그 무슨 일을 당할지라도 주님께서 이겨내게 하시고 최후 승리를 얻게 하실 것이다. 예수께서도 분명하게 약속하셨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16:33)

 

예수를 만나니 38년 된 병자가 자리를 들고 일어나 걷게 되었다. 

예수를 만나니 나면서부터 앞을 보지 못하던 이가 눈을 뜨게 되었다.

예수를 만나 예수의 옷자락을 만지니 12해 혈루병이 깨끗해졌다. 

예수를 찾아가니 예수께서 오셔서 죽은 나사로를 다시 살려내셨다.

예수 안에서 살아가니 부활과 영생의 은총을 누리며 살게 해 주셨다. 

 

신앙 생활이 무엇인가. “난 평생 주여 주여 하며 살았어도 되는 일이 없어요.”그런 소리 하면 안된다. 손경민의 찬양 <은혜>의 가사가 무엇인가. 

 

“내가 누려 왔던 모든 것들이

내가 지나왔던 모든 순간이

내가 걸어 왔던 모든 순간이

당연한 것 아니라 은혜였소

 

내가 이 땅에 태어나 사는 것

어린 아이 시절과 지금까지

숨을 쉬며 살며 꿈을 꾸는 삶

당연한 것 아니라 은혜였소

 

모든 것이 은혜 은혜 은혜

한 없는 은혜

 

내 삶에 당연한 건 하나도 없었던 것을

모든 것이 은혜 은혜였소”

 

그렇다. 지금 다윗은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기억하며 주께 감사 기도를 드리고 있는 것이다. 감사 찬송을 부르고 있는 것이다. 5절의 내용처럼 “여호와의 크신 영광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하나님은 높이 계셔도 낮은 자를 굽어 살피시고  멀리서도 교만한 자를 아신다. 6절의 ‘낮은 자’란 자신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깨달아 알고 하나님을 겸손하게 의지하며 살아가는 자이다. 그러나 교만한 자란 자기 자신을 드러내고 자랑하며 남을 무시고 깔보며 살아가는 자이다. 교만한 자란 하나님을 부인하며 살아가는 자이다. 사울 왕은 하나님 앞에서 점점 교만하게 살다가 불행하게 끝나고 말았다. 그러나 다윗 왕은 하나님 앞에서 점점 자신을 낮추며 겸손하게 살면서 큰 복을 받아 누렸다. 하나님은 인간의 마음의 생각과 행위를 감찰하신다. 그 누구라도 하나님 앞에서 불순종하고 어리석고 교만하게 살아가면 화와 불행과 심판을 자초하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고 겸비하게 순종하며 살아가면 하나님이 그 인생에게 복을 주시고 점점 존귀하게 하신다. 사울 왕이나 솔로몬 왕의 시작과 나중을 보라. 그러나 다윗왕은 달랐다. 시작이 중요하지만 과정과 나중이 더 중요한 것 아닌가. 

 

다윗은 점점 주 안에서 겸손한 삶을 살아가고자 하였다. 다윗의 소원은 4절 말씀 그대로 이방의 왕들이라도 세상의 모든 왕들이 주께 감사하며 주의 말씀을 듣는 날이 오기를 고대하였다. 5절에 보면, 이방 왕들도 여호와의 도 즉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찬양하고 노래하는 날이 오기를 소원하였다. 이방왕들이라도 여호와의 크신 영광을 따라서 살기를 소원하였다. 여호와 하나님을 향한 다윗의 믿음은 분명하였다. 8절에 보니까,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영원합니다”라고 주를 경배하였다. 

 

다윗처럼 나를 주의 오른손으로 붙들어 구원하시고 나를 위하여 보상해 주시는 주님을 굳게 믿고 섬기며 살아가자. 다윗처럼 감사함으로 기도하며 찬송하며 예배하며 살아가는 중에 날마다 순간마다 주의 언약의 말씀 안에서 간증이 넘쳐나는 주인공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축원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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