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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대한감리회 예수사랑교회
예수를 바라본 사람들Ⅲ(요3:1-15) -니고데모– 2026. 1. 18

본문

                 예수를 바라본 사람들Ⅲ(요3:1-15)            2026. 1. 18

                        -니고데모– 



바라본다는 것은 “알아본다, 체험한다”는 뜻을 의미한다. 예수께서 사역을 시작하신 후에 예수님은 가는 곳곳마다에서 각양 기사와 이적을 행하셨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이 행하신 그 기사와 이적들을 한결같이 ‘표적’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표적(sign)이란 누군가가 행한 특별한 그 무엇을 말한다. 예수님께서 가나 혼인집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기적을 요한복음 2장 11절은 ‘첫 표적’이라고 하였다. 요한복음 2장 23절에 보면, “많은 사람이 그의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의 이름을 믿었다”라고 하였다. 예수님은 유월절이 가까워오는 때에 예루살렘 성전에 가셨다. 성전 안에는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신 예수님은 양이나 소를 성전 뜰에서 내어 쫓으셨다.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셨다. 상을 엎어 버리셨다.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고 꾸짖으셨다.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라고 말씀하셨다. 그 당시의 예루살렘 성전은 헤롯의 명령으로 46년 동안 지은 거대한 성전이었다. 예수님의 이와 같은 행보를 요한복음은 ‘표적’이라고 하였다. 


우리는 요한복음 3장에 나오는 니고데모에 관한 내용을 많이 안다. 어려서부터 교회에 다닌 경우에는 교회학교 예배 시간에 수도 없이 듣고 또 들은 이야기 중의 하나가 니고데모에 관한 이야기였을 것이다. <돈으로도 못가요 하나님 나라>라는 찬양도 수도 없이 부르고 또 불렀다. 


돈으로도 못가요. 하나님 나라-

힘으로도 못가요. 하나님 나라-

거듭나면 가는 나라 하나님 나라-

믿음으로 가는 나라- 하나님 나라-


벼슬로도 못가요 하나님 나라-

지식으로 못가요. 하나님 나라-

거듭나면 가는 나라 하나님 나라-

믿음으로 가는 나라- 하나님 나라-

 

이와 같은 어린이 눈높이의 찬양 가사에 복음의 핵심이 다 담겨 있다. 하나님의 나라 즉 천국 백성이 되는 길이 무엇인가를 깨우쳐 주는 성경의 핵심 가치를 모두 다 담고 있는 찬양이다. 오늘,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찾아갔던 니고데모의 이야기를 통해서 은혜를 나누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밤중에 예수를 찾아온 바리새인.

니고데모는 바리새인이었다. 그는 70명으로 구성된 산헤드린 공회원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는 예수의 장례를 위하여 값비싼 몰약과 침향이 섞인 32.7kg이나 되는 100리트라 분량의 장례용품을 챙겨가지고 나타날 정도의 재력가였다. 부자였다. 니고데모란 이름의 뜻은‘정복자’이다. 아들에게 그런 이름을 지어줄 정도의 가정이면 얼마나 권력 지향, 출세 지향의 가정 배경에서 나서 자랐는가를 넉넉히 짐작하게 하는 인물이다. 그는 그의 이름처럼 유대 사회의 중심인물이 되었다. 게다가 바리새인이었다. 율법을 많이 공부한 율법학자이다. 모세의 율법에 능통하고 늘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살려고 씨름하는 인물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 바리새인이라는 그 호칭 자체로 그의 신분이 구별되고 보장되는 그 당시 유대 사회의 중심 세력이었다. 


그런 그가 무엇이 아쉬워서 예수님을 찾아 왔을까. 그것도 한 밤중에 개인적으로 예수께 찾아온 것이다. 그가 예수를 문제 삼기로 했다면 예루살렘 성전 소요 사건의 중심인물로 지목하고 주변의 세력들을 선동해서 예수를 곤경에 빠지게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니고데모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밤에 가만히 예수께 찾아 왔다. 예수를 만난 그는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니고데모가 한 말의 내용을 보라.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유대 사회에 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의 지위에 있던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향해서 ‘랍비여’라고 부른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이라고 인정하였다. 이는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라고 존대하는 말을 한 것이다. 또한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이라는 언급은 예수님을 ‘임마누엘’ 즉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당시에 주목받고 있는 하나님의 사람인 것을 시인한 고백이다. 그렇다. 이미 그 당시에 예루살렘과 유대의 고을마다 도성마다 그 어디에서나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로 시끌벅적하던 때였다. 요한복음 1장에 보면,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의 대표자들을 선정해서 광야에서 지내는 세례 요한에게 보냈다. 요한복음 1장 24절에 보면 저들을 선정해서 보낸 이들은 바리새인이라고 했다. 저들은 “네가 누구냐”라고 질문하였다. 세례 요한은 자기 자신에 대하여 말하지 않고 예수님에 대하여 말하였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이것이 무슨 의미인가. 그 당시에 유대인들은 수 백년 동안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가 오시기를 고대하고 있었다. 수 많은 유대인들이 광야의 세례 요한에게 몰려가서 세례를 받을 때에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나서서 그에게 질문한 것이다. “네가 누구냐” 그 때에 세례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에대하여 증언하였다. “나는 주의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이다”저들이 다녀 간 다음 날 예수님이 광야의 세례 요한에게 찾아 가셨다. 그 뗘에 저만치 다가 오시는 예수님을 알아 본 세례요한은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예수님을 소개하였다. 


그 날 예수님은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다. 성령이 비둘기같이 임하였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하나님의 음성도 들었다. 이런 일련의 일들이 세상에 소문에 소문을 이어 가던 어느 날 밤에 바리새인 중의 한 사람인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찾아 나선 것이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 당시에 예수님을 찾아 나선 것은 병자와 병자의 가족들, 귀신 들린 자를 데리고 오는 백성들 뿐만이 아니었다. 예수님에 대한 소문과 관심을 갖는 이들은 지위 고하, 남자 여자 어른 아이의 구별이 없었다. 예루살렘과 갈릴리와 온 유대 땅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 파다하였다. 그런 예수님, 그런 하나님의 아들의 수 많은 표적과 행보가 알려지던 때에 바리새인 중의 한 사람이며 70명의 공회원 중의 한 사람이었던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찾아 나선 것이다. 


그렇다. 이는 오늘날도 마찬가지이다. 기독교에 대한 관심, 하나님에 대한 관심, 예수님께 대한 관심, 성경에 대한 관심을 가진 이들이 의외로 세상에는 많다. 그래서 성경도 읽어 보고 싶어 하고, 기독교 서적도 읽어 보려고 한다. 교회에도 다녀 보고 싶어하기도 신앙 상담도 받아 보려는 이들도 있을 수 있다. 그 뿐만 아니라 성경의 내용도 좀 알고 하나님이 누구신지, 예수님이 누구신지에 대한 관심도 없지 않다. 마치도 예수님을 만나서 이런 저런 말을 먼저 꺼낸 니고데모의 고백처럼 말이다. 그러나 거기까지일 뿐이다. 



왜 거듭나야 하는가.

예수님은 밤 중에 그를 찾아 온 바리새인, 니고데모에게 이렇게 말문을 여셨다.“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당황스러워진 니고데모는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다시 날 수 있단 말입니까 두 번째 어머니의 태에 들어갔다가 다시 날 수 있다는 말입니까”라고 반문하였다. 그때에 예수님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라고 좀 더 심각하게 대답해 주셨다. 


예수님을 찾아 온 니고데모의 관심은 예수님의 신분에 관한 것이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구원 받는 길,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길에 대한 말씀으로 화제를 바꾸신 것이다. 오늘날도 우리는 사회적인 신분에 관심이 많다. 소위 상대방의 이력서에 관심이 많다. 성씨가 뭐냐, 부모가 뭐하시냐, 어느 학교 출신이냐, 전공이 뭐냐, 인물은 좋으냐, 키가 얼마나 되냐, 건강은 어떠냐, 사회적인 지위가 뭐냐, 무슨 직함을 갖고 있느냐, 높은 자리냐 낮은 자리냐, 공무원이라면 몇 급 공무원이냐, 군인이라면 계급이 뭐냐, 직장인이라면 직급이 뭐냐, 어느 회사에 다니냐, 연봉이 얼마냐, 사업가라면 연 매출이 얼마냐, 자산 규모는 어떻게 되냐, 주식을 상장한 회사냐, 그렇다면 그 회사의 요즘 주식 시세는 어느 정도냐 등등 뭐 다 이런 사회적인 정황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상대방을 대하려고 한다. 


그런데 예수님은 전혀 다른 주제의 대화를 시작하셨다. “네가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네가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라는 말씀 을 하셨다. 예수님의 관심은 거듭남과 하나님의 나라였다. 거듭난다는 것이 무엇인가.


거듭난다

중생한다

신생한다

다시 난다

Born Again 한다는 말이 무슨 뜻일까.


예수님이 사용하신 ‘아노덴’이란 말씀은 ‘위로부터, 꼭대기로부터, 처음부터, 다시’라는 뜻을 담고 있다. 다 맞다. 다 옳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 되려면 위로부터, 하늘로부터, 하나님으로부터, 처음부터, 다시 태어나야 한다. 하나님께로부터 새롭게 다시 태어나야 한다. 이는 내가 나의 주격이 아니다. 철저히 나는 하나님으로부터의 피동인 것이다. “하나님에 의해서 새롭게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는 것은 인간의 노력이나 각성이나 결단이나 열심이나 수양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권능으로만 가능한 것이다. 그렇지 않나. 한 가정에 아기가 탄생하였다. 그러나 한 아기의 탄생을 아빠가 정하고 엄마가 정할 수 있는가. 아니다. 전적인 하나님의 영역이다. 창조의 신비, 잉태의 신비, 모태에서의 양육의 신비를 거쳐서 이 세상에 탄생하는 것이다. 체질, 건강 상태, 피부색, 이목구비를 비롯한 얼굴의 생김새, 외모, 체형, 키, 몸무게 그 무엇하나 내 맘대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엄마의 선택도 아빠의 결정도 아니다. 전적으로 생명의 잉태와 탄생의 과정에 창조주의 신비가 담겨 있는 것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거듭남이란 그런 영역이다. 3절에 ‘본다’는 것은 ‘경험한다. 참여한다. 인식한다’라는 뜻이 담겨 있다. 그러므로 거듭나야 하나님의 나라를 체험하고 하나님의 나라에 참여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깨달아 알고 인식하게 된다는 초청인 것이다. 누가복음 2장 26절에 “시므온이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라는 말씀이 있다. 그렇다. 시므온은 평생토록 하나님의 성전에 머물며 하나님의 아들이 탄생하시기를 기다렸다. 때가 되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보았다. 아기 예수를 품에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였다.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눅2:29-32)

 

이와 같은 찬송의 고백을 들은 요셉과 마리아는 놀랍게 여겼다. 시므온은 요셉과 마리아에게 예수는 “표적이 되기 위하여 세움을 받았고 칼이 마음을 찌르듯 할 것이고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는”분으로 이 땅에 오셨다고 설명해 주었다. 실로 예수님은 가시는 곳곳마다에서 그의 말씀을 전해 듣는 백성들의 마음을 칼로 찌르듯하는 말씀을 선포하셨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이처럼 철저하게 회개를 촉구하셨다. 


예수님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라고 가르쳐 주셨다. 물은 성결의 상징이다. 구약의 제사도 물이 없이는 불가능하였다. 성막과 성전에는 물두멍 즉 바다라고 이름하는 큰 물통이 있었다. 제사를 집전하기 전에 제사장은 친히 자신을 물로 정결하게 씻어야 했다. 또한 성령은 살리는 영이다. 요즘 날마다 묵상을 시작한 마태복음에는 ‘불과 성령으로’라고 하였다. 맞다. 우리는 물세례 뿐만 아니라 불세례와 성령 세례를 모두 다 받아야 한다. 불은 태우는 것이다. 소멸하는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설명할 수 없는 열과 빛을 발산하는 것이다. 성령을 불로 설명하는 것은 상징이다. 사도행전 2장에 성령 강림의 현장을 하늘로부터 임하는 급하고 강한 바람과 같은 소리와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현상으로 설명하였다. 


도시 생활은 불을 볼 기회가 적다. 그러나 과거에 농촌에서는 아궁이마다 불을 피웠다. 요즘은 캠핑이나 가야 불멍을 경험할 수 있다. 그러나 과거에는 아궁이마다 불을 피웠다. 불 앞에 앉아 있으면 불의 신비를 주목하게 된다. 생각하여 보라. 물이 없는 일상이 불가능하다. 그뿐만 아니라 불의 사용이 없는 일상도 불가능한 것이다. 성령의 임재란 물과 같은 성령, 바람과 같은 성령, 불과 같은 성령의 임재 가운데 변화를 체험하는 것이다. 물과 불은 힘이며 에너지다. 그러므로 물 세례 뿐만 아니라 불과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 거듭남을 체험해야 한다. 물 세례는 교회 공동체의 일원이 된다는 상징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야 한다. 성령 세례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회개하여 거듭나게 하시는 영적 사건이다. 그러므로 성령 세례를 받은 사람은 내 안에서 주님이 늘 함께 계셔서 내 안에서 일어나는 죄와 악과 싸워 이기는 체험 속에 살아가야 한다. 사탄 마귀가 지배하던 옛사람은 죽고 내 안에서 예수님이 함께 거하시는 임재의 체험 속에 살아가는 것이다. 이것은 예수님과의 연합된 생활이다. 예수님과 하나가 된 생활이다. 예수님과 동행하는 생활이다. 


두 주 전에 성령 세례, 성령 내주, 성령 충만을 도표로 설명 나누었다. 예수님을 교회에 와서만 만나지 말고 예수님을 내 마음 중심에 모시고 살아가는 것이 성령의 충만함인 것이다. 그래야 항상 하나님의 나라가 보이고 언제라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못 알아듣고 돌아간 유대인의 지도자.

성경은 니고데모가 유대인의 지도자라고 하였다. 우리 성경에는 지도자라고 했지만 원래는 ‘산헤드린 공회원’을 가르키는 말이다. 니고데모는 70명 중의 한 사람인 공회원이었다. 유대 사회에 70명 밖에 않되는 명망있는 지도자였다. 그런데 예수님의 이 귀한 가르침을 니고데모는 못알아 들었다. 그래서는 “내가 나이가 많은데, 내가 늙었는데 어떻게 어머니의 태어 다시 들어갔다가 나 올 수 있다는 말인가요”라고 반문하였다. 예수님은 답답해 하시면서 설명을 이어 가셨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어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니고데모는 여전히 못 알아 들었다. “어찌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예수님은 답답해 하시면서 책망하시듯이 다시 설명을 이어 가셨다.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는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의 증언을 받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0-15) 


이어지는 말씀이 그 유명한 요한복음 3장 16절이다. 17절까지를 보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구원을 받는 길은 거듭나는 길이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서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천국 백성다운 삶을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주님이 기대하시는 삶이다. 그런데 니고데모는 고민하며 돌아갔다. 그리고 그는 시간이 지나면서 예수님의 말씀을 깨달은 믿음의 사람이 되었다. 요한복음 7장 45절 이하에 보면 예수님을 체포해다가 처형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되었다. 그래서는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작당해서 아랫 사람들을 동원하였다. 그런데 빈손으로 돌아왔다. 예수를 붙잡아 오려고 갔던 아랫 사람들이 예수님의 전하시는 말씀에 귀가 쫑긋해져서 빈손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그 사람이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 때까지 없었나이다”라고 보고하였다. 바리새인들은 나서서 “너희도 미혹되었느냐”라고 호통을 쳤다. “당국자들이나 바리새인 중에 예수를 믿는 이들이 있느냐”라고 다그쳤다.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 무리는 저주를 받은 자들이다”라고 저주하는 말도 내뱉았다. 그 때에 니고데모가 나서서 한마디 하였다. “우리의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심판하느냐”(요7:51) 이 말을 들은 주변의 바리새인들이 니고데모를 조롱하였다. “너도 갈릴리에서 왔느냐”니고데모는 요한복음 3장의 그 날 밤 예수님을 만난 후에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한 흔적이 분명하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따르는 자의 삶을 살았다. 예수님을 장사 지낸 아리마대 사람 요셉도 공회원이다. 마태복음 27장 57절에 보면 “그도 예수의 제자라”라고 하였다. 아마도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예수의 제자의 삶을 살았던 것을 보면 그의 곁에서 많은 양의 몰약과 침향을 가지고 와서 예수님의 장례를 도왔던 니고데모도 예수님의 제자 중 한 사람이 된 것이 분명하다. 전승에 따르면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부활 승천 이후에 복음을 전하다가 동족인 유대인들에 의해서 순교 당했다고 전해진다. 신앙생활은 신앙적인 질문을 가지고 고민하며 살아가는 긴긴 여정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못 알아듣고 돌아간 니고데모가 나중에 역사적인 현장에서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면모를 보인 것처럼 물과 불과 성령으로 거듭나고 하나님 나라 백성답게 살아가는 각 사람이 다 되기를 소원한다. 아멘

예수사랑 조회 3회 2026-01-20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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