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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문    |  지성래목사  | 설교문
끌려가신 예수(마26:57-68) 202103028종려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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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1-04-09 15:01 조회 4,939 댓글 0
 

                        끌려가신 예수(마26:57-68)            2021. 3. 28  종려주일



예수께서 이 땅에 계시던 그 당시의 이스라엘은 로마의 지배 아래 있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강력한 지도자가 나타나서 이스라엘을 로마의 세력으로부터 해방시킬 날이 오기를 고대하고 있었다. 그 당시에 예수의 인기는 백성들의 기대 이상이었다. 예수께서는 가는 곳마다 기사와 이적을 행하였기 때문이다. 벳세다 광야에서 저녁나절을 맞은 이만여 명의 무리는 예수께서 어린 아이의 보리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베푸시는 기적의 떡과 생선을 배불리 먹었다. 그날 기적을 체험한 백성들은 예수를 왕 삼자고 웅성거렸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해가 기운 시간에 제자들로 하여금 먼저 갈릴리 건너편을 향해 배를 타고 출발하게 하셨다. 그리고는 홀로 따로 산에 올라가서 밤새 기도하셨다. 그 깊은 밤중에 바람과 큰 물결 중에 고생하는 제자들이 탄 배 곁으로 물 위를 걸어서 다가가셨다. 예수는 밤낮 기적의 주인공이셨다. 


백성들의 기대 속에는 예수라면 로마의 지배를 벗어나게 할만한 왕의 권세가 충분하리라고 여겼다. 시간이 흐르고 해가 바뀌어 유월절이 다가 왔다. 예수는 그 며칠 전인 오늘 새끼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다. 겉옷을 벗어서 길에 까는 이들도 있었다. 엄청난 무리가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호산나”를 외쳐 댔다. 호산나라는 말은 “우리를 구원하소서”라는 뜻을 담고 있다. 그렇게 ‘호산나 호산나’ 하고 외치던 무리가 며칠 뒤에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함성을 지르는 무리로 돌변하였다.


예수는 이 땅에 평화의 왕으로 오셨다. 그는 영원한 평화를 위하여 붙잡혀 온갖 수치와 고난을 다 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 밤새도록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신 예수를 그 날 이른 새벽에 찾아 온 것은 가롯 유다였다. 이미 예수를 대제사장에게 은 삼십을 받고 팔아 버린 가롯 유다는 가증스럽게 예수께 다가가서 입을 맞추었다. 칼과 몽치를 들고 찾아온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이 보낸 무리가 예수를 결박하여 끌고 갔다. 몽치란 곤봉처럼 생긴 사람이나 짐승을 때리려고 만든 길이가 짧은 나무 몽둥이를 말한다. 


오늘 말씀은 예수를 결박하여 끌고 대제사장 가야바의 뜰로 이동하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된다. 이미 그곳에는 역대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 서기관, 그리고 백성의 장로들이 몰려와 있었다. 


그동안 두 차례나 큰소리를 치며 장담하던 베드로는 예수께서 심문을 받으시고 조롱당하시는 동안 대제사장의 바깥 뜰에서 멀찍이 예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날 그 새벽 시간 베드로의 착잡한 심정을 가장 잘 나타내는 표현이 마태복음 26장 58절에 나온다. “멀찍이”라는 표현이다. 그렇지 않나. 평소에 가깝게 대하던 인간 관계일지라도 막상 불편한 일이 생기고 가까이하기에 곤란해 지면 사이가 점점 멀어 지는 법이 아닌가. 58절 후반부에 보니까 “그 결말을 보려고” 하인들 사이에 끼어 함께 앉아 있었다고 했다. 


69절에 보면 그 때 한 여종이 베드로의 가까이에 다가가서 말했다. “너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베드로는 주변의 많은사람들 앞에서 자신은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하고 맹세하고 저주하였다. 그 때에 곧 닭이 울었다. 베드로는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는 예수의 말씀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였다. 그리고 다른 제자들과 함께 어디론가 가서 숨어 버렸다. 



심문을 받으시는 예수.

예수는 가야바의 뜰에 홀로 남았다. 대 제사장들과 온 공회가 나서서 예수를 죽일 거짓 증거를 찾으려고 모의하고 있었다. 그때에 두 사람이 나서서“이 사람의 말이 내가 하나님의 성전을 헐고 사흘 동안에 지을 수 있다 하더라”고 거짓 증언을 했다. 침묵하시는 예수 앞에서 대 제사장은 “내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고 다그쳤다. 그제서야 예수는 “네가 말하였느니라”고 대답하였다. 


대 제사장은 옷을 찢으며 예수가 신성모독하는 말을 하였다고 말하며 사형감이라고 주장하며 상황을 몰고 갔다. 예수는 거짓 증인들이 나서서 모함하는 말을 가지고 죽음으로 몰아 가려는 대제사장들과 공회원들에 의해서 본디오 빌라도에게 넘겨 졌고 사형언도를 받았다. 물론 예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 대하여 언급하신 적이 있다. 요한복음 2장 19절에 보면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고 하셨다. 거기 요한복음 2장의 그 말씀 뒤에 보면 21절에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고 하였다. 맞다. 예수는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는 말씀을 하실 때에 장차 당하실 십자가 죽음과 사흘 만에 무덤에서 부활하실 자신의 부활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이셨다. 그런데 거짓 증언하는 이들이 나서서 예수를 모함한 것이다. 이 거짓 증언을 들은 대 제사장이 자기 옷을 찢으며 ‘신성 모독’하는 말을 했다고 하며 주변 사람들을 선동하였다.  66절에 보니까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대제사장이 분위기를 예수를 사형감으로 몰아가자 무리들이 나서서 동조하였다.“그는 사형에 해당하니라.”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1987년이란 다큐물 영화가 있다. 1987년 1월에 전기 고문과 물 고문으로 목숨을 잃은 박종철 군 사건을 다루었다. 그 당시 서울대 언어학과 학생회장이었던 박종철군은 21살이었다. 그를 극악하게 물고문해서 죽음으로 몰고 간 당사자들은 “책상을 ‘탁’ 치니까 놀래서 ‘억’하고 죽었다.” 고 거짓증언을 하였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며 그 처참하고 악날했던 고문 정치의 사실에 명명 백백하게 드러났다. 박종철 군의 안타까운 죽음은 같은 해 6.10항쟁으로 이어졌고 민주화의 불을 붙이는 도화선이 되어 갔다. 


이천 년 전의 예수는 거짓 증언 하는 이들과 그들의 거짓 증언을 기회 삼아서 예수를 사형에 처해지도록 십자가 처형 대상으로 몰고 갔다. 그 해의 대제사장이었던 가야바와 그의 장인 안나스와 역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 바리새인, 백성의 장로들과 산헤드린의 공회원들의 음모에 의해서 예수는 유대인을 통치하던 로마에서 파견 받은 총독 본디오 빌라도에게 넘겨 졌고 십자가 처형을 당하게 되었다. 본디오 빌라도는 로마 시대의 폰티우스 필라투스(Pontius Pilatus, 재위 AD 26-36)라는 인물이다. 안토니오 시세리의 ‘에케 호모'(이 사람을 보라)라는 그림에 보면 그 날의 역사적인 장면을 사진처럼 생생하게 묘사하였다. 


로마의 법에 의해 지배를 받던 그 당시의 유대 나라에도 나름대로 사람을 재판하는 제도가 정해져 있었다. 그런 면에서 예수를 사형으로 몰고 가는 결정은 분명한 불법이며 위법한 일이었다. 

(1) 재판은 해가 뜬 낮에 이루어지는 법인데 해뜨기 전에 이뤄진 재판이었다는 점. 

(2) 예수 측에 세워진 변호인이 한 사람도 없었던 점. 

(3) 재판 소송은 적어도 이틀간의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안식일, 유월절, 장막절 등의 절기 전날에는 새로운 재판이 집행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들은 이것을 무시한 채 동트기 전의 새벽에 모든 절차를 마치려 한 점

(4) 72명으로 구성된 재판 권한이 주어진 공회 즉 산헤드린의 공식적 회집 장소에서가 아닌 가야바의 거처에서 재판이 졸속 진행된 점.

(5) 전 대제사장 출신인 안나스 앞에서조차 증인 없는 심문 강행된 점. 

(6) 공회의 의장이 나서지 않고 가야바 대제사장 직접 심문한 점.

(7) 이미 죽여 없애려는 음모를 꾸며 놓고 사형에 해당하는 자라고 분위기를 몰아서 모든 재판 과정을 그것에 맞추어 거짓되고 무리하게 진행한 점 등이다. 


실로 심문을 받고 엄중한 역사의 판결에 의해 엄벌을 받아야 할 자들은 거짓 증인을 앞세워 거짓된 선동으로 예수를 십자가 처형으로 몰고 가려 한 자들이었다. 거짓으로 똘똘 뭉쳤던 대제사장 가야바를 비롯한 역대 대제사장을 지낸 이들과 공회원들이었다. 백성의 장로들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야말로 법의 심판을 톡톡히 받아야 할 자들이었다. 예수는 그런 거짓된 무리들에 의해서 새벽 시간에 강제로 붙잡혀 끌려가서 억울하게 심문을 받게 되었다.  



나중 일을 말씀하시는 예수.

침묵하시던 예수는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는 대제사장의 질문 앞에 “네가 말하였느니라”하고 대답하였다. 그리고 하신 말씀이 이것이다. 64절에 보면 장차 이루어질 예수의 승천과 재림에 대하여 언급하셨다. 놀랍지 않나. 지금 몇 시간 후면 사형 언도를 받고 골고다 언덕에 끌려가서 처참하게 십자가에 처형될 예수께서는 죽음의 두려움에 대하여는 한 마디도 하지 않으셨다. 부활에 대하여 오히려 당연한 일로 여기시면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고 선포하셨다. 이 얼마나 권위 있고 위엄이 있는 대답인가. 그렇다. 예수는 지금 대제사장 가야바가 묻고 있는 그대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시다. 예수가 그리스도 즉 메시아이다. 그런데 저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몰라보고 죽이려고 하는 것이다. 

지금 예수를 죽여 없애려는 일에 온갖 거짓 궤계를 짜고 있는 저들에게 예수는 전혀 차원이 다른 말씀으로 대답하신 것이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는 대제사장의 질문 앞에 예수는 “네가 말하였느니라” 그리고 “너희가 보리라”는 짧은 대답으로 지금은 너희가 나를 죽이려 하고 있지만 “장차 나는 부활할 것이고 하나님 아버지의 보좌 우편에 앉을 것이며 하늘 구름을 타고 재림할 것을 너희가 보리라”는 대답으로 저들이 지금 음모를 꾸며 예수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거짓에 대하여 준언하게 심판하는 승리의 선언을 미리 담대하게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 


쉽게 말하며 “그래 너희들은 나를 죽여라. 나를 십자가에 못 박아라.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는 나를 다시 살리실 것이며 하나님의 권능의 보좌 우편에 앉게 하실 것이며 구름 타고 이 땅에 다시 보냄을 받게 될 것이다.”라고 권세 있게 대답하신 것이다. 



조롱을 당하시는 예수.

상황이 이쯤 되자 대제사장 가야바는 신성 모독 운운하면서 예수를 사형에 해당하는 자라고 선동하며 분위기를 몰아갔다. 그 때에 기다렸다는 듯이 예수를 포박하고 있던 칼과 몽치를 든 자들이 예수의 얼굴에 침을 뱉았다. 주먹으로 쳤다. 어떤 사람은 손바닥으로 때렸다. 같은 장면을 다룬 누가복음 22장 63절 이하에 보면 지키는 무리들이 예수를 희롱하고 때리고 눈을 가렸다. 그리고“선지자 노릇하라 너를 친자가 누구냐”고 조롱하면서 많은 말로 욕을 하였다. 


생각해 보라. 우리는 누가 나에게 대하여 험담하는 이야기만 들어도 속상해 한다. 밤 잠을 설친다. 억울해 한다. 복수하고 싶어한다. 앙갚음하고 싶어한다. 그런데 예수는 그의 면전에서 그의 얼굴에 침을 뱉고 주먹으로 치고 손바닥으로 때리고 눈을 가리고 “선지자 노릇하라”고 빈정대는 폭도들의 조롱과  무수한 욕을 다 당하셔야만 했다. 


유대인들은 해마다 유월절이 되면 사형당할 죄수 한 명을 사면해서 풀어 주는 전례가 있었다. 그런데 호산나 호산나 하던 무리들이 강도 바라바는 풀어 주고 죄 없으신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쳐 대기 시작하였다. 판단이 흐려진 본디오 빌라도는 예수에게서 사형에 처할만한 죄몫이 없는 것을 알면서도 무리의 요구를 받아들여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내어 주었다. 


마태복음 27장 27절 이하에 보면 본디오 빌라도에게 인계된 후에는 로마의 병정들이 예수의 옷을 빨가벗겼다. 그리고 홍포를 입혔다. 여기 홍포란 로마의 군인들이나 시장관의 어깨에 걸치던 짧고 붉은 색의 망토를 말한다. 이는 왕의 권세를 상징하는 잛은 망토로 빨가 벗겨진 예수의 부끄럽게 드러난 몸의 일부에 걸치게 해서 “네가 과연 유대인의 왕이냐 꼴 좋다”하고 조롱해 댄 것이다. 그리고 가시관을 엮어서 머리에 씌웠다. 갈대를 손에 들게 하였다. 왕이 손에 드는 홀 대신에 갈대를 들게 해서 예수에게 점점 조롱하고 희롱하는 강도를 높여 간 것이다. 어떤 로마의 병사는 예수 앞에 무릎을 꿇고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하며 희롱하기도 하였다. 침을 뱉기도 하고 손에 들게 했던 갈대를 빼앗아서 예수의 머리를 내려쳤다. 한 참 희롱한 후에 홍포를 다시 벗기고 도로 예수의 옷을 입혔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기 위해서 골고다 언덕을 향하여 끌고 갔다. 


614장 찬송가 “얼마나 아프셨나”를 부르며 성찬을 준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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